본문 바로가기

고전 운문

고려가요 동동 전문 핵심 정리 현대어 풀이 해제 해설

반응형

2024년 EBS 수능특강에 수록된 고려가요 '동동'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여성적 어조로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연가적 작품이면서,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노래하고 있는 월령체 작품입니다.

그럼 이 작품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도록 하지요.

 

고려가요 동동 상세 해설

고려가요인 '동동'의 핵심적인 특징부터 설명을 드릴게요.

우선 이 작품은 앞서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1월부터 12월까지 달에 따라서 내용이 전개되는 형식을 보입니다. 이러한 것을 월령체 또는 달거리 노래라고 합니다. 보통 이러한 월령체는 당시의 세시 풍습을 잘 보여주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조선 시대에는 이러한 월령체를 통해서 농민들에게 절기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이 작품은 총 13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금 이상하지요? 1년은 12 달인데요. 이 작품의 1연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동동'의 전체적인 내용은 임에 대한 그리움과 이별로 인한 슬픔입니다. 그런데 1연의 내용은 임금의 복을 빌고 있지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1연, 즉 서사 부분은 후대에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고려가요라는 갈래의 특징과도 관련이 깊은데요. 원래 '고려가요'는 고려시대에 평민들 사이에서 창작되고 향유되던 문학 갈래였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글자가 없어 한자로 기록을 남겨야 했는데, 글을 아는 서민들은 드물었지요. 따라서 이러한 고려 가요 작품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구비', '구전'을 통해서 전달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려가요를 조선 시대에 한글로 기록하여 '악학궤범', '악장가사', '시용향악보' 등에 수록했습니다. 그리고 이 고려가요를 궁중 음악의 가사로 사용했지요. 따라서 왕이나 왕실에 대한 축복에 대한 내용을 후대에 추가했을 개연성이 높은 것이지요. 

또 이 작품은 '아으 동동다리'라는 후렴구가 연이 끝나는 부분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 후렴구는 고려가요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매 연의 마지막에 같은 소리가 반복이 되면서, 운율을 형성하고 구조적 안정감과 통일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반복의 주요 효과 중에 하나인 의미가 강조되지는 않는데요. 그 이유는 '아으 동동다리' 자체가 별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려 가요에는 음악적 효과를 위해 별 의미 없는 말을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을 '여음구', 또는 '조흥구'라고도 합니다. 참 후렴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설명 안 드렸는데요. 후렴구를 통해서 연을 구분하게 됩니다. 이렇게 연이 구분되는 작품을 '분연체 = 분절체 = 분장체'라고 합니다. 후렴구를 통해서 연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고려가요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것이 후렴구가 없는 고려가요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그럼 작품의 내용을 설명드릴게요.

'동동'은 서사를 제외하고는 임과 이별한 여인의 슬픔과 임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느끼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죠. 핵심 포인트만 짚어서 설명을 드릴게요. 정월은 1월을 의미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당연히 양력이 아니라 음력을 기준으로 하겠지요. 정월은 냇물은 얼고 녹고 하는데, 즉 안 좋을 때도 좋을 때도 있는데 화자는 항상 혼자 있다고 냇물과 대비를 하여 화자 자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월은 임의 훌륭한 인격을 높이 켜 놓은 등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역시 사랑은 위대한 것 같습니다. 자신을 떠난 임도 이렇게 예찬을 하게 만들다니요.

3월은 임의 아름다운 외모를 예찬하고 있습니다. 완연한 봄(만춘)에 '달욋고지'에 비유하고 있지요. 달욋고지는 '진달래꽃', 또는 '오이꽃'으로 해석이 됩니다. 임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의미지요.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4월은 곳고리(꾀꼬리새)와 임을 대비하여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임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꾀꼬리새는 4월이 되면 어김없이 오는데 임은 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화자는 임을 '녹사님'이라고 부리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한데요. '녹사'는 고려 시대의 벼슬 이름입니다. 따라서 화자가 사랑하는 임의 신분과 또 화자가 여성임을 알려주는 단어가 되는 것이죠.

5월은 단오날 아침의 약은 장수하게 만드는 약이기 때문에 임에게 바친답니다. 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정성이 드러나지요.

6월 화자 자신을 벼랑에 버린 빗에 비유하여 임에게 버림받은 화자의 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음력 6월 15일을 유두일이라고 부르며 평상시에 사용하던 물건을 버리고 액땜을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7월은 여러 제물을 차려 놓고 임과 함께 하고 싶다는 화자의 궁극적인 소망을 빌고 있지요.

8월에는 추석이 있습니다. 한가위는 1년 중에 가장 풍요로운 날이고 즐거운 날이지만 임과 함께 있어야 추석도 의미가 있고 즐겁다는 말을 하며 임과 함께 하지 못하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지요.

9월에는 임이 없는 초가집이 외롭고 쓸쓸하다는 말을 하고 있고, 10월에는 화자 자신의 신세가 꺾인 나뭇가지와 같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심심하면 나뭇가지를 꺾어서 놀다가 싫증 나면 버리듯이 그렇게 화자가 버려졌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 엄청 절절한데요. '꺾어 버리신 후에 지니실 한 분이 없으시도다'라고 말을 하지요. 그 한 분은 임이고요. 임에게 버림받은 화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11월은 임과 떨어져 슬픈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12월은 화자 자신의 처지를 밥상에 놓이는 젓가락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임과 함께 하고 싶어 임의 앞에 젓가락을 놓았으나, 원했던 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젓가락을 물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요. 이는 임과 함께 하고 싶었으나, 결국 다른 사람과 결혼할 처지가 되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제가 작품 속에 나오는 세시 풍습을 간략하게 설명은 드렸으나 부족할 듯하여 아래에 해당 자료를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고려가요-동동-해설-1
고려가요-동동-해설-1

 

고려가요-동동-해설-2
고려가요-동동-해설-2

 

핵심 정리

갈래: 고려 가요
성격: 연가풍, 민요풍, 송도가, 이별가
화자: 여성적 화자
주제: 임에 대한 송도와 연모, 이별의 슬픔

형식: 

1. 전 13연의 달거리 형식(월령체) → 서사는 궁중 유입 과정에서 덧붙여졌을 것으로 추정됨.
2. 후렴구가 있어 연 구분을 용이하게 하고 음악적 흥취를 고조시킴(분절체)

의의:

1. 국문학 최초의 달거리(월령체) 형식 노래.
2. 노래에 나오는 명절과 풍속의 모습은 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됨.

 

현대어 풀이

덕은 뒤에(뒷잔에, 신령님께) 바치옵고, 복은 앞에(앞잔에, 임에게) 바치오니, 덕이며 복이라 하는 것을 진상(進上)하러 오십시오.
정월 냇물은 아아, 얼려 녹으려 하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이 몸이며, 홀로 살아가는구나.
2월 보름에 아아, 높이 켜 놓은 등불 같구나. 만인을 비추실 모습이시도다.
3월 지나며 핀 아아, 늦봄의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태어나셨구나.
4월을 잊지 않고 아아, 오는구나 꾀꼬리새여. 무엇 때문에(어찌하여) 녹사(綠事)님은 옛 나를 잊고 계시는가.
5월 5일(단오)에 아아, 단옷날 아침 약은 천 년을 사실 약이기에 바치옵니다.
6월 보름(유두일)에 아아, 벼랑에 버린 빗 같구나. 돌아보실 임을 잠시나마 따르겠습니다.
7월 보름(백중)에 아아, 여러 가지 제물을 별어 놓고 임과 함께 살고자 소원을 비옵니다.
8월 보름(한가위)은 아아, 한가윗날이지마는, 임을 모시고 지내야만 오늘이 뜻있는 한가윗날입니다.
9월 9일(중양절)에 아아, 약이라고 먹는 노란 국화꽃이 집 안에 피니 초가집이 고요하구나.
10월에 아아, 잘게 썰은 보리수나무 같구나. 꺾어 버리신 후에 (나무를) 지니실 한 분이 없으시도다.
11월에 봉당 자리에 아아, 한삼을 덮고 누워 슬퍼할 일이로구나. 고운 임을 여의고 제각기 홀로 살아가는구나.
12월에 분지나무로 깎은 아아, (임에게 드릴) 소반 위의 젓가락 같구나. 임의 앞에 들어 가지런히 놓으니 손님이 가져다가 뭅니다.

 

해제

이 작품은 현존하는 국문학 작품 중 가장 오래된 월령체 노래로, 송도(頌禱)의 성격을 지닌 서사 부분과 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12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노래는 분연체 형식과 후렴구 사용 등 형태적인 면에서 고려 가요의 일반적인 특성을 보여 주고 있고, 각 달의 특성과 세시 풍속을 중심으로 송축과 찬양, 떠나버린 임에 대한 원망과 한스러움, 그리움 등 시적 화자의 애절한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시적 화자와 시적 대상을 다양한 사물에 비유한 표현도 이 노래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 노래는 시상이 일관된 흐름을 보여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 연의 주제도 통일되어 있지 않아 한 작가의 일관된 정서의 표출이라고 보기 힘들다. 서사(序詞)와 2, 3, 5월령은 임을 향한 순수한 송도(頌禱)의 내용이다. 따라서 이때의 ‘임’은 임금 혹은 임금처럼 높이 추앙된 공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월, 4월령은 개인적 정서, 즉 구체적인 시적 화자의 고독이며, ‘나의 임’에 대한 원망적 호소를 담고 있다. 또한 6, 7, 8월령은 공적 정서와 개인적 정서가 융합된 중간적 정감의 노래이다. 그리고 11월령과 12월령은 임에 대한 그리움과 임과 각기 살아가는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이다. 이것은 이 노래가 원래 연가(戀歌)적 성격의 민요였으나, 궁중으로 흘러 들어가 궁중 연악(宴樂)으로 쓰이면서 변형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동동에 제시된 세시 풍속

○ 연등제
정월 보름에 불을 켜고 부처에게 복을 비는 불교적 성격을 띤 국가적 행사. 551년(진흥왕 12)에 팔관회(八關會)의 개설과 함께 국가적인 행사로 열리게 되었고, 특히 고려 때 성행하였다. 불교에서는 불전(佛前)에 등을 밝히는 등공양(燈供養)을 향공양(香供養)과 더불어 중요시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전에 등을 밝혀서 자신의 마음을 밝고 맑고 바르게 하여 불덕(佛德)을 찬양하고, 대자 대비한 부처에게 귀의하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 의거하여 연등회가 거국적인 행사로서 성대하게 시행되었다. 고려 초기에는 정월 15일에 연등이 있었으며, 정월 15일의 연등이 987년(성종 6) 10월에 정회(停會)되었다가 현종 때 2월 15일로 복설해서 그 뒤 고려 멸망 때까지 열렸다.

○ 유두일
음력 6월 보름으로, 명절의 하나. 복중(伏中)에 들어 있으며 유둣날이라 한다. 이날은 일가 친지들이 맑은 시내나 산간 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뒤, 가지고 간 음식을 먹으면서 서늘하게 하루를 지낸다. 이것을 유두잔치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에 질병을 물리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 풍속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고려 희종 때의 학자 김극기(갏克己)의 “김거사집”에 “동도(東都:경주)의 풍속에 6월 15일 동류수(東流水)에 머리를 감아 액을 떨어 버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 백종
음력 7월 15일로 백중(百中)·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종은, 이 무렵에 과실과 소채(蔬菜)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백가지 곡식의 씨앗〔種子〕을 갖추어 놓았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중략> 불가(佛家)에서는 불제자 목련(目蓮)이 그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7월 15일에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공양했다는 고사에 따라 우란분회(盂갿盆會)를 열어 공양을 하는 풍속이 있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나 고려 때에는 일반인까지 참여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사찰에서만 행해지고 민간에서는 소멸되었다. 백종이 되면 여러 행사가 있어 왔다. 우선 각 가정에서 익은 과일을 따서 조상의 사당에 천신을 한 다음에 먹는 천신 차례를 지냈으며, 옛날에는 종묘(宗廟)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하는 일도 있었다. 농가에서는 백종이 되면 머슴을 하루 쉬게 하고 돈을 준다. 머슴들은 그 돈으로 장에 가서 술도 마시고 음식을 사 먹고 물건도 산다. 그래서 ‘백중장’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 가배
음력 8월 15일로, 명절의 하나이다. 추석·가위·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이 때는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 있어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을 거둘 계절이 되었고 1년 중 가장 큰 만월 날을 맞이하였으니 즐겁고 마음이 풍족하였다.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므로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가배를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 시대 초기이었으니,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 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 중양절
음력 9월 9일로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중양은 양이 겹쳤다는 뜻이니 양수인 홀수가 겹친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도 다 중양이 될 수 있겠으나, 중양이라고 하면 중구를 가리킨다. 중구는 음양 철학적인 중일명절(重日名節)의 한 대표적인 명절이었다. 중국에서는 한 대(漢代) 이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상국(賞菊)·등고(登高)·시주(詩酒)로 즐겨 온 날이었다. 당·송 대(唐宋代)에도 관리들의 휴가일로서 추석보다도 훨씬 성대한 명절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시대부터 안압지의 임해전(臨海殿)이나 월상루(月上걹)에서 군신이 중구에 연례적으로 모여서 시가를 즐긴 듯하다. 고려 시대에는 중구의 향연이 국가적으로 정해져 있는 규례이다. 내외 신하들과 송나라·탐라(耽갥)·흑수(黑水)의 외객들까지 그 축하연에 참석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다시 세종 때에 중삼·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성종 때에는 추석에 지내던 기로연(耆老宴 : 노인 잔치)도 중구로 바꾸어서 지내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웅진출판주식회사, 199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