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수필 작품인 장유의 '곡목설'을 설명드리겠습니다. 2023년 EBS 수능특강에 수록되었고 모의고사에도 몇 번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 작품입니다. '곡목설'은 '굽은 나무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이죠. 그럼 서술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죠.
편집과 수정이 가능한 파일 형태의 EBS 수능특강 및 수능완성 해설 자료가 필요하시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s://cafe.naver.com/literatureidea/603
무릉도원 회원 가입 안내
2023년 연회원권 구매 안내 이용료 안내 1년 이용료 7만원 2022년 이용권 기간(2023년 2월 1일 ~ 2024년 1월 31일) 서비스: EBS 수능특강(문학) 해설...
cafe.naver.com
장유의 곡목설 해설, 특징 및 핵심 정리
장유의 '곡목설'에 대한 해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고전 수필입니다. 그중에서도 '설'이라는 갈래이지요. 교과서에서 주로 다뤄지는 고전 수필은 '설'과 '기' 두 종류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수험생이 할 필요는 없는 공부입니다.
'곡목설'의 주요 키워드를 말씀드리면 '유추', '대화 형식', '구체적 경험'입니다. 작품은 장생과 '나'의 대화로 구성이 되는데요. 이 작품이 수필이니 '나'는 서술자이자 글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떤 이야기를 하냐면 장생이라는 사람이 '나무들이 곧게 자라지 않아 집을 지을 때 쓸 재목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쓸 만한 인재(동량지재), 또는 정직한 사람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산꼭대기에 곧아 보이는 나무가 있어 갔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 나무도 휘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겉으로 보면 알 수 있는 나무도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곧은지 휘었는지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은 파악하기 더욱 어렵다고 한탄을 하고 있지요. 나무에서 사람으로 인식이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서로 다른 소재인 '나무'와 '사람'의 공통점을 활용하여 곧음과 구부러짐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죠.
이러한 '장생'의 말에 서술자인 '나'는 '장생'의 생각을 상당 부분 긍정하면서도 그의 생각을 확장하고 보완을 합니다. 경전의 말을 인용하여 나무는 원래 속성이 곧거나 구부러져 있으니, 구부러진 나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요. 하지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게 태어난다는 공자의 성선설을 인용하여, 선함이라는 타고난 천성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와 인간을 대비, 대조하여 곧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강조하고 있지요. 또한 나무에서 인간으로 확장한 깨달음을 정치로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관리 중에 구부러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고, 또 이러한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요.
핵심 정리
갈래: 고전 수필(설)
주제: 구부러진 나무처럼 부정직한 인물들이 중용되는 세태 비판.
성격: 비유적, 우의적, 비판적
특징:
1. 유추의 방식을 통해 주제를 강화함.
2. 대화 형식을 통해서 글이 전개됨.
3.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드러냄.
4. 대상의 대비를 통해서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함.
5. 성현과 경전의 말을 인용하여 주장을 강화함
구성:
1. 전반부(장생의 말): 굽은 나무 같은 위선적인 인간이 득세하는 세상.
2. 후반부(장자의 말): 재목으로 쓰이지 않는 굽은 나무와 달리 위선적인 사람을 인재로 쓰는 조정.
어휘 및 구절 해설
* 집을 지으려고 ~ 용도에 맞지 않았다.: 곧게 자라지 않아 재목으로 쓸만한 나무를 찾을 수 없었음 → 재목은 인재와 대응됨.
* 구부러져 있는 나무였다: 구부러진 나무를 보고 바르지 못한 자를 떠올림.
* 장생은 도끼를 내던지고 탄식했다.: 나무가 굽은 것에 대한 실망 + 세태에 대한 비판.
* 재목이 될 만한 것은 ~ 쉽게 가름할 수 있다.: 대개 나무가 곧은지는 겉으로 보면 쉽게 판단이 가능함.
* 내가 세 번이나 살폈어도 ~ 알지 못하였구나.: 여러 번 살펴보았음에도 나무가 구부러진 것을 몰랐음.
* 하물며 사람들 ~ 이런 부류의 사람들 때문이다.: 나무도 곧음을 판단하기 어려운데 사람은 더욱 어렵다. (나무에서 사람으로 인식의 대상이 확장됨)
* 절개를 지켜야 하는 경우에 ~ 이런 부류의 사람들 때문이다.: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인물이 많음을 말함 → 이러한 사람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듦(나무와 사람을 유추를 통해 표현)
* 바르지 못한 자가 많고 정직한 자가 적은 것이야 조금도 괴이한 것이 아니로구나.: 사람은 물질적 욕망과 이해관계로 가득한 사회에 살아가니 곧은 사람이 적은 것이 자연스러움.
* 공자께서는 ~ 말씀하셨네.: 타고난 천성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함( 공자의 말을 인용(신뢰성을 높임), 사람의 속성(정직함))
* 사람 가운데 곧지 못한 자는 ~ 쓰지 않은 적이 없네.: 나무와 대조적으로 곧지 않은 자를 등용하는 현실 비판.
* ‘활줄처럼 곧으면 길가에서 죽고, 갈고리처럼 굽으면 공후에 봉해진다.: 곧은 사람은 배척받고 곧지 않은 사람은 권세를 누림(인용, 대조)
해제
이 글은 겉으로 보기에는 곧은 나무가 알고 보면 곡목, 즉 굽은 나무였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성품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당당하게 행세하는 인간사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서 굽을 수도 있는 나무와 오직 곧기만 한 인간의 천성을 대비하여 바른 도를 소유하지 못한 조정의 관료들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를 다른 사태에 전이시켜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설(說)’ 양식의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글쓴이와 이웃에 사는 사람들 간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유, 곡목설 전문
이웃에 장생(張生)이라는 자가 살고 있었다. 장차 집을 지으려고 산에 들어가 재목을 구하였는데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 모두가 구불구불하게 비틀어져 용도에 맞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산속에 있는 무덤가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앞에서 보아도 곧바르고 왼쪽에서 보아도 쭉 뻗었으며 오른쪽에서 보아도 곧기만 하였다. 그래서 좋은 재목이라 생각하고는 도끼를 들고 그쪽으로 가서 뒤에서 살펴보니 슬쩍 구부러져 쓸 수 없는 나무였다. 이에 도끼를 내던지고 탄식하기를, “아, 재목이 될 나무는 얼른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어 고르기가 용이한 법인데, 이 나무의 경우는 내가 세 번이나 다른 쪽에서 살폈어도 쓸모없는 나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용모를 그럴듯하게 꾸미면서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사람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말을 들어 보면 조리가 정연하고 그 용모를 살펴보면 선량하게만 여겨지며 사소한 행동을 관찰해 보아도 삼가며 몸을 단속하고 있으니 영락없이 군자의 모습이라고 할 것인데, 급기야 큰 변고를 당해 절개를 지켜야 할 때에 가서는 본래의 정체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마니, 국가가 결딴나고 마는 것은 늘 이런 자들 때문이다. 대저 나무의 생장 과정을 보건대, 소나 염소가 짓밟지도 않고 도끼나 자귀에 의해 해침을 받지도 않는 채 비와 이슬을 맞고 무성해지면서 밤낮으로 커 나가니 쭉쭉 뻗어 곧게 올라가야 마땅할 것인데도 그만 이토록 구부러져 쓸모없이 되는 경우가 또한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이 세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의 경우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물욕(物欲)이 참된 성품을 혼탁하게 하고 이해(利害) 관계가 분별력을 흐리게 한 나머지 천성(天性)이 왜곡되어 본래의 모습에서 일탈된 경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별나게 행동하며 속임수를 쓰는 자는 많고 바르고 곧게 행동하는 자가 적은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하고는 마침내 이 일을 장자(張子)에게 이야기하였다. 장자가 대답하였는데, 그 말이 이러하였다. “관찰력이 대단하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나 역시 해 줄 말이 있다. 「홍범(洪範)」 에서 오행(五行)을 논할 때 목(木)에 대해서는 그 속성이 구부러지고 [曲] 바르다[直] 하였다. 그러고 보면 나무가 굽었을 경우 재목으로는 쓸 수 없을지 몰라도 속성으로 볼 때는 원래가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는 태어날 때부터의 속성이 바르기만 하니 바르게 행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요행히 환란을 면한 것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으로 태어나 정직하게 살아가지 않는데도 죽음을 면하는 것 역시 요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보건대, 나무가 구부러졌을 경우는 비록 보잘것없는 목수라 하더라도 가져다 쓰는 법이 없지만, 사람이 곧지 못할 경우에는 아무리 정치를 잘하는 시대라 하더라도 내버리고 쓰지 않은 적이 없다. 자네도 큰 건물을 한번 보게나. 마룻대나 기둥이나 서까래는 말할 것도 없고 구름 모양으로 꾸미거나 물결처럼 장식할 경우에도 구부러진 재목이 있는 것을 보지를 못하였다. 이번에는 조정을 한번 보게나. 공경(公卿)과 사대부(士大夫)로서 화려한 관복(官服)을 입고는 조정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자들치고 바른 도(道)를 소유한 자는 보지를 못하였다. 이처럼 구부러진 나무는 늘 불행하지만 비뚤어진 사람은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활줄처럼 곧으면 길가에서 죽고 갈고리처럼 굽으면 공후(公侯)에 봉해진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말을 통해서도 곡사(曲士)가 곡목(曲木)보다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징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