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의 현대 소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해설
이번 시간에는 김소진 작가의 단편 소설이자 성장 소설인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를 해설하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을 처음 볼 때 제목이 신기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작품을 보면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깨진 검은 항아리를 숨기기 위해 눈사람을 만들어 넣어둔 것입니다. 작품의 제목이자 중심 소재인 이것을 통해서 주인공인 '나'는 삶의 깨달음을 얻고 성숙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
그럼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면서 무슨 말인지 좀 더 상세하게 설명을 드릴게요.
주인공인 '나'는 어린 시절의 고향인 산동네를 찾아갑니다. '산동네'는 산과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주로 가난한 마을을 의미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달동네'라는 표현이 있지요. 그 산동네는 재개발이 되어 곧 없어지게 될 예정이었지요. 산동네에 도착한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작품이 역순행적 구성임을 알 수 있지요. 어린 시절에 욕쟁이 할머니의 짠지 단지를 깨뜨리고 그것을 수습하려고 짠지 단지를 눈사람 속에다 숨겨 놓고 도망칩니다. 한마디로 가출을 감행한 것이지요. 작품 속 주인공인 '나'는 그만큼 무서웠던 거죠. 그렇게 한나절을 심각하게 돌아다녔던 '나'는 잔뜩 혼날 것을 예상하며 두려움에 떨면서 집에 돌아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나'의 생각과 전혀 달랐죠. 평상시랑 똑같았던 겁니다. 자신은 정말 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는데 별일이 아니었던 거죠. 이러한 경험에서 '나'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냥 주변인일 뿐임을 깨닫게 되지요. 이러한 충격적 체험은 '나'가 성숙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주인공의 깨달음을 좀 더 쉽게 풀어서 설명을 드리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이런 생각은 마치 본능과도 같은 겁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모든 행동에 다른 사람들이 일일이 반응을 해주니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삶이 있고 자신의 것에 몰두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에 그리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따라서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주변인일 수밖에 없는 거지요. 물론 '나' 스스로에게는 중심인물이겠지만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은 주인공이고 주위 사람들은 조연이지요. 그 얘기를 바꿔서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조연일 뿐이지요. 주인공인 '나'는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던 겁니다. 산동네였던 어린 시절의 고향에서요. 그런데 이러한 고향이 재개발로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단순히 추억이 서린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 '나'라는 자아를 만들고 성숙을 이룬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정리하면 이 작품은 두 개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나'는 중심인물이 아니라 주변 인물이라는 깨달음을, 둘째는 어린 시절의 고향은 자신의 존재를 지탱해 준 기억의 터전으로 이곳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같이 철저하게 도시인인 사람도 추억이 서려 있는 동네 단골집들이 하나 둘 없어지고 있어서 슬픔을 느끼는데, 고향이라는 공간을 소중하게 여겼던 저보다 전 세대의 사람들은 얼마나 큰 상실감을 느끼겠어요.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것보다 추억이 서린 공간이 없어지는 것을 더 슬퍼하는 것이 나이를 먹어가는 건가 봅니다.
특징 및 핵심 정리
갈래: 현대 소설, 단편 소설, 성장 소설
성격: 회상적, 상징적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배경: 1990년대, 서울 산동네
제재: 항아리를 깨뜨리고 눈사람 속에 숨겼던 어린 시절의 기억
주제: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통한 정신적 성장
특징:
1. 현재 - 과거 - 현재의 역순행적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음.
2. 인물 간 갈등보다는 인물의 내면 묘사에 초점을 두고 있음.
3.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작품 속 서술자가 자신의 심리를 직접 서술하고 있음.
전체 줄거리
재개발 이야기가 한창인 고향의 산동네 셋집에 볼일이 있어 들른 '나'는 욕쟁이 할머니의 짠지 단지를 깨뜨리고 두려움 때문에 항아리를 눈사람 속에 감추고 하루 동안 가출을 감행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어느 겨울 이른 새벽, '나는 오줌을 누러 나왔다가 같은 공동 주택 이웃인 욕쟁이 할머니의 짠지 단지를 실수로 깨뜨리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단지를 눈사람으로 위장해 숨겨 놓고 고뇌하면서 일부러 '더러운 곳'을 찾아 바깥을 돌아다니다 들어온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보니 눈사람도, 깨진 항아리도 모두 사라져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한다. '나'는 그런 세계가 낯설어 울음을 터트린다. 기억에서 돌아온 '나'는 재개발 지역에서 '창이 형'을 만나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변의를 느낀다. 그리고 폐허 사이에서 깨진 항아리를 발견하여 거기에 똥을 누며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이제껏 자신의 존재를 지탱해 준 기억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사실, 그러한 현실 앞에서 똥을 누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괴감으로 인한 눈물이었다. 똥을 다 눈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산동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해제
자신의 삶을 꼼꼼하게 되짚으며 성찰하는 과정에서 소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의 시선을 잃지 않는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한 소년이 세계가 자신과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깨달음을 얻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묘사한 단편 성장 소설로서,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어린아이의 정신적 성장의 계기와 더불어 기억과 공간의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나'는 자신이 깨뜨린 항아리를 눈사람으로 위장한 뒤 가출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자신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주변일 뿐이라는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적 충격은 성인이 된 현재의 '나'까지 이어지고, 어른이 된 '나'는 자신의 존재의 기반이 되어 주던 고향 산동네가 재개발로 허물어지는 상황에서 상실감을 느낀다.
김소진의 작품 성향
김소진의 작품은 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폭력성을 드러낸다. 1970년대 산동네 민중들의 삶을 풍부한 입말로 되살려내는 김소진의 작품 성향은 등단작인 '쥐잡기'와 생애 마지막 작품인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도 두드러진다. 김소진은 70년대 도시 주변부 밑바닥 삶과 후기 자본주의 사회로 치닫기 시작한 90년대 한국사회의 이면을 역순행적 구성을 통한 과거 회상의 현식으로 병치함으로써, 현대인의 실존적 문제가 시대적 간극과 상관없이 존재함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