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EBS 수능특강에 '만무방'이 수록되어 예전에 수록되었던 부분과 이번에 수록된 부분을 합쳐서 자료를 다시 만들고, 글을 보완합니다.
김유정 작가의 현대 소설 '만무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읽어 보지는 않아도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제목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제 블로그에 해설이 없다는 것을 지금 알고 이렇게 해설 글을 쓰고 있고요. EBS 연계 교재에는 2021년 수능특강에 수록되었습니다.
편집과 수정이 가능한 파일 형태의 EBS 수능특강 및 수능완성 해설 자료가 필요하시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s://cafe.naver.com/literatureidea/603
무릉도원 회원 가입 안내
2023년 연회원권 구매 안내 이용료 안내 1년 이용료 7만원 2022년 이용권 기간(2023년 2월 1일 ~ 2024년 1월 31일) 서비스: EBS 수능특강(문학) 해설...
cafe.naver.com
김유정 만무방 상세 해설
그럼 본격적으로 김유정의 현대 소설인 '만무방'에 대한 해설을 시작하겠습니다. 김유정 작가는 원래 재밌는 글을 쓰기로 유명한 소설가이지요. 특유의 해학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작품이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김유정의 작품은 향토성과 토속성이 두드러진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은근한 풍자가 숨어 있지요. 1930년대 일제 강점기의 농촌 현실의 모순을 담고 있지요. 김유정 작가의 작품에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일제에 협력하는 친일 지주 세력과 그 밑에서 일하는 마름, 그리고 이러한 권력층에 땅을 빌려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소작농의 권력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농촌의 모순과 부조리가 작품 저변에 깔려 있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김유정 작가의 작품들은 당시 상황에 대한 비판 의식이 조금씩 숨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대놓고 드러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설명을 드릴 '만무방'은 김유정 작가의 작품 치고는 비판의 강도가 센 작품이라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우회적으로 상황을 비판하고 비꼬고 있는 풍자가 활용된 작품이지요.
작품의 제목인 '만무방'은 염치가 없이 막된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응칠'을 '만무방'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응칠이가 아무렇게나 막살아가는 만무방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성실한 농부였지요. 하지만 열심히 살아도 빚만 늘어가는 상황에서 가족과도 흩어져 '만무방'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겁니다. 이 작품은 많은 '아이러니'가 담겨 있는데, 모순적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국어 선생임에도 '아이러니(irony)'라는 영어를 쓰는 이유는 이 말 외에는 정확하게 표현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는 '부조화'라는 말이 맞기는 한데 조금 그렇지요. 국어에서 아이러니를 '반어'이라는 단어로 생각하시면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문학 작품에서 '아이러니'라는 표현은 무엇인가 상황이 어긋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조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예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보시면 비 오는 어느 날 김첨지는 돈을 아주 많이 법니다. 그래서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김첨지의 아내는 죽어가고 있었지요. 상황이 어그러져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아이러니라고 하지요.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 자체는 '반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체 상황 자체를 반어라고 표현하기는 좀 문제가 있지요. 그래서 아이러니라는 표현을 쓰는 겁니다. 물론 '반어적', '역설적', '모순적'이라는 범위가 넓은 단어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적이라는 것은 그러한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 비교적 사용하기에 안전한 표현이니까요. 여하튼 다시 만무방 작품으로 돌아가서, 응칠은 도박과 도둑질을 일삼고, 순사에게 잡혀가기 일쑤이지만, 사람들한테 배척받기는커녕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사회 질서를 위반하는 사람이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이상하지요. 물론 당시 농민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를 못 할 것도 아니지요. 너무나도 열심히 사는데 일제에 지주에 마름에 수탈당하고, 이자를 내면 남는 것 없이 굶어 죽기 직전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으니, 일탈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또 작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작품의 결론은 반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문학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이니 대놓고 스포를 하면 성실한 농부이자 '응칠'의 동생인 '응오'가 범인입니다. 자신의 논에서 자신의 벼를 응오가 훔치고 있는 것이지요.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도지와 빚을 제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오히려 빚만 지는 상황에서 응오는 자신의 벼를 자신이 훔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 것이지요. '자신의 논에서 벼를 도둑질한다.' 말 자체가 이상하지요. 아이러니합니다. 작품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응오도 자신의 형인 응칠과 같이 만무방의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응칠도 처음부터 만무방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는 농군이었으나, 추수 후에 빈손이 된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 만무방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응칠이 만무방이 된 것도, 응오가 만무방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은 개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것이지요. 개인들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먹고살 수 없는 현실은 사회가 잘못된 것이지요. 즉, 김유정의 만무방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무방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일제 강점기 농촌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꼬집고 비판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징 및 핵심 정리
갈래: 단편 소설, 농촌 소설.
성격: 반어적, 토속적, 비판적.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일제 강점기,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
주제: 일제 강점기 가혹한 수탈로 인한 농촌의 피폐한 현실.
의의: 식민지 경제 체제의 실상과 농촌의 구조적 모순을 폭로함.
특징:
1. 간결하고 사실적인 문체와 토속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생동감 있게 묘사.
2. 일제 강점기 궁핍한 농민의 상황을 반어적인 기법을 통해 표현.
3. 당대 사회의 현실적 모순을 해학적으로 그려 냄.
4. 표면적으로 웃음을 유발하지만 이면적으로는 당시 사회를 고발하며 비판함.
5. 현재형 어미 활용을 통해 응칠이 도둑을 잡으려 하고, 도둑의 정체가 밝혀지는 상황을 현장감 있게 보여줌.
구성: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5단 구성
1. 발단: 동생 응오를 찾아온 응칠의 한가로운 생활.
2. 전개: 응칠은 자신이 응오네 벼를 훔친 도둑으로 몰릴 것으로 생각함.
3. 위기: 응오의 벼를 훔친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하는 응칠.
4. 절정: 도둑이 동생임을 알고 어이가 없어 우두망찰하는 응칠.
5. 결말: 황소 훔칠 것을 거절하는 동생을 때려서 등에 업고 내려오는 응칠.
인물 분석
· 응칠: 성실한 농민이었으나, 빚 때문에 유랑 걸식하는 만무방이 됨. 절도와 노름으로 전전하지만 형제애와 사람에 대한 애정을 지닌 인물. 동생 응오에 비해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있음.
· 응오: 순진하고 성실한 인물. 추수도 거부할 만큼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자신이 경작한 벼를 훔침. 농촌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결국 만무방이 된 인물.
만무방의 아이러니
· 농사를 포기하고 도박과 절도를 일삼으며 유랑하는 응칠이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기는커녕 부러움과 존경을 받음.
· 성실한 농군으로 살아가는 응오가 노동의 대가를 얻기는커녕 가난을 못 이겨 자신의 논에서 벼를 도둑질하는 일을 벌임.
· 작품에서 형상화된 아이러니한 상황들은 일제 강점기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음.
전체 줄거리
성실하게 농사를 했지만, 부랑자로 몰락하며 마을을 떠난 응칠은 그리운 마음에 아우인 응오를 찾아온다. 그런데 성실한 농군인 응오는 논의 벼를 베지 않고 있다가 벼를 도둑맞는다. 응칠은 도난 사건과 관련하여 전과자인 자신이 의심받을 것을 우려하여 직접 도둑을 잡기로 한다. 응칠은 의심이 가는 주변 사람을 조사하고 응오의 논에 잠복도 하다가 벼를 다시 훔치러 온 도둑을 잡는다. 하지만 그 도둑이 응오라는 사실에 응칠은 놀라며 자신의 것을 자신이 훔칠 수밖에 없는 응오의 처지를 비통해한다.
해제
이 작품은 소작 농민인 응오가 수확은 하지 않고 자신의 벼를 훔치는 참담한 상황을 반어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응오가 자신의 논에서 스스로 벼를 훔치는 이유는 힘든 경작 끝에 수확을 해도 도지와 부채, 세금으로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식민지의 농촌 경제 체제가 지닌 가혹함을 구체적으로 부각하는 데 이바지하며 독자가 이 소설의 제목인 ‘만무방’, 즉 ‘염치없이 막돼먹은 존재’가 누구인지를 깊게 고민하게 한다.
김유정 만무방 지문(2021년 EBS 수능특강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응칠은 성실하게 농사를 했지만 쌓여 가는 빚을 이기지 못해 아내와 헤어지고 유랑민이 된다. 응칠은 그리 운 마음에 성실한 농부인 아우 응오를 찾아오게 되고 응고개 논의 벼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것은 작년 응오와 같이 지주 문전에서 타작을 하던 친구라면 묻지는 않으리라. 한 해 동안 애를 졸이며 홑자식 모양으로 알뜰히 가꾸던 그 벼를 거둬들임은 기쁨에 틀림없었다. 꼭두새벽부터 엣, 엣, 하며 괴로움을 모른다. 그러나 캄캄하도록 털고 나서 지주에게 도지*를 제하고, 장리쌀을 제하고, 색조* 를 제하고 보니 남은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이 있을 따름. 그것은 슬프다 하기보다 끝없이 부끄러 웠다. 같이 털어 주던 동무들이 뻔히 보고 섰는데 빈 지게로 덜렁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건 진정 열없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참다 참다 응오는 눈에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가뜩한데 엎치고 덮치더라고 올해는 고나마 흉작이었다. 샛바람과 비에 벼는 깨깨 배틀렸다. 이놈을 가을하다*간 먹을 게 남지 않음은 물론이요 빚도 다 못 가릴 모양. 에라 빌어먹을 거. 너들끼리 캐다 먹 든 말든 멋대로 하여라, 하고 내던져 두지 않을 수 없다. 벼를 거뒀다고 말만 나면 빚쟁이들은 우 몰려들 거니깐 — 응칠이의 죄목은 여기에서도 또렷이 드러난다. 국으로 가만만 있었으면 좋은 걸 이 사품에 뛰어들어 지주의 뺨을 제법 갈긴 것이 응칠이였다. 처음에야 그럴 작정이 아니었다. 그는 여러 곳 물을 마신 만치 어지간히 속이 트인 건달이었다. 지주를 만나 까놓고 썩 좋은 소리로 의논하였다. 올 농사는 반실이니 도지도 좀 감해 주는 게 어떠냐고. 그러 나 지주는 암말 없이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정 이러면 하여튼 일 년 품은 빼야 할 테니 나는 그놈에다 불을 지르겠수, 하여도 잠자코 응치 않는다. 지주로 보면 자기로도 그 벼는 넉넉히 거둬들일 수는 있다. 마는 한번 버릇을 잘못해 놓으면 여느 작인까지 행실을 버릴까 염려하여 겉으로 독촉만 하고 있는 터였 다. 실상이야 고까짓 벼쯤 있어도 고만 없어도 고만 — 그 심보를 눈치채고 응칠이는 화를 벌컥 낸 것만은 좋으나, 저도 모르게 대뜸 주먹뺨이 들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문제 중에 있는 벼인데 귀신의 놀음 같은 변괴가 생겼다. 다시 말하면 벼가 없어졌다. 그것 도 병들어 쓰러진 쭉정이는 젖혀 놓고 무얼로 그랬는지 말짱 이삭만 따 갔다. 그 면적으로 어림하면 아 마 못 돼도 한 댓 말가량은 될는지 — 응칠이가 아침 일찍이 그 논께로 노닐자 이걸 발견하고 기가 막혔다. 누굴 성가시게 하려고 그러는지. 산속에 파묻힌 논이라 아직은 본 사람이 없는 모양 같다. 하나 동리에 이 소문이 퍼지기만 하면 저는 어느 모로 보든 혐의를 받아 폐는 좋이 입어야 될 것이다. 응칠이는 송이도 송이려니와 실상은 궁리에 바빴다. 속중으로 지목 갈 만한 놈을 여럿 들어 보았으나 이렇다 짚을 만한 증거가 없다. 어쩌면 재성이나 성팔이 이 둘 중의 짓이리라, 하고 결국 이렇게 생각 든 것도 응칠이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응칠이는 저의 짐작이 들어맞음을 알고 당장에 일을 낼 듯이 성팔이의 눈을 드리 노렸다. 성팔이는 신이 나서 떠들다가 그 눈총에 어이가 질리어 고만 벙벙하였다. 그리고 얼굴이 해쓱하여 마 주 대고 쳐다보더니, “그래, 자네 왜 그케 노하나. 지내다 보니깐 그렇길래 일테면 자네 보구 얘기지 뭐…….” 하고 뒷갈망을 못 하여 우물쭈물한다. / “노하긴 누가 노해 —” 응칠이는 뻐팅겼던 몸에 좀 더 힘을 올리며, / “응고개를 어째 갔더냐 말이지?” “놀러 갔다 오는 길인데 우연히…….” / “놀러 갔다. 거기가 노는 덴가?” “글쎄, 그렇게까지 물을 게 뭔가. 난 응고개 아니라 서울은 못 갈 사람인가.” 하다가 성팔이는 속이 타는지 코로 흐응, 하고 날숨을 길게 뽑는다. 이렇게 나오는 데는 더 물을 필요가 없었다. 성팔이란 놈도 여간내기가 아니요 구장네 솥인가 뭔가 떼 다 먹고 한 번 다녀온 놈이었다. 많이 사귀지는 못했으나 동리 평판이 그놈과 같이 다니다가는 엉뚱한 일 만난다 한다. 이번에 응칠이 저 역시 그 섭수*에 걸렸음을 알고, “그야 응고개라구 못 갈 리 없을 테 —” 하고 한번 엇먹다*, 그러나 자네두 아다시피 거 어디야, 거기 바로 길이 있다든지, 사람 사는 동리라면 혹 모른다 하지마는 성한 사람이야 응고개엘 뭘 먹으러 가나, 그렇지 자네야 심심하니까, 하고 앞을 꽉 눌러 등을 떠본다.
(중략)
응칠이는 논께로 바특이 내려서서 소나무에 몸을 착 붙였다. 섣불리 서둘다간 낫의 횡액을 입을지도 모른다. 다 훔쳐 가지고 나올 때만 기다린다. 몽둥이는 잔뜩 힘을 올린다. 한 식경쯤 지났을까, 도적은 다시 나타난다. 논둑에 머리만 내놓고 사면을 두리번거리더니 그제서 기 어 나온다. 얼굴에는 눈만 내놓고 수건인지 뭔지 헝겊이 가렸다. 봇짐을 등에 짊어 메고는 허리를 구붓이 뺑손을 놓는다. 그러나 응칠이가 날쌔게 달려들며, / “이 자식, 남의 벼를 훔쳐 가니—!” 하고 대포처럼 고함을 지르니 논둑으로 고대로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진다. 얼결에 호되게 놀란 모양이었다. 응칠이는 덤벼들어 우선 허리께를 내려 조졌다. 어이쿠쿠, 쿠, — 하고 처참한 비명이다. 이 소리에 귀가 번쩍 띄어 그 고개를 들고 팔부터 벗겨 보았다. 그러나 너무나 어이가 없었음인지 시선을 치걷으며 그 자리에 우두망찰한다. 그것은 무서운 침묵이었다. 살뚱맞은 바람만 공중에서 북새*를 논다. 한참을 신음하다 도적은 일어나더니, “성님까지 이렇게 못살게 굴기유?” 제법 눈을 부라리며 몸을 홱 돌린다. 그리고 느끼며 울음이 복받친다. 봇짐도 내버린 채, “내 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 / 하고 되퉁스러이 내뱉고는 비틀비틀 논 저쪽으로 없어진다. 형은 너무 꿈속 같아서 멍하니 섰을 뿐이다. 그러다 얼마 지나서 한 손으로 그 봇짐을 들어 본다. 가뿐 하니 끽 말가웃이나 될는지. 이까짓 걸 요렇게까지 해 가려는 그 심정은 실로 알 수 없다. 벼를 논에다 도로 털어 버렸다. 그리고 아내의 치마이겠지, 검은 보자기를 척척 개서 들었다. 내 걸 내가 먹는다 — 그야 이를 말이랴. 허나 내 걸 내가 훔쳐야 할 그 운명도 얄궂거니와 형을 배반하고 이 짓을 벌인 아우도 아우이렷다. 에—이 고연 놈, 할 제 볼을 적시는 것은 눈물이다.
어휘 및 구절 해설
*도지: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논밭을 빌린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
*색조: 세곡이나 환곡을 받을 때나 타작할 때에 정부나 지주가 더 받던 곡식.
*가을하다: 농작물 따위를 거두어들이다.
*섭수: ‘수단’의 방언. ‘수단’은 일을 처리하여 나가는 솜씨와 꾀.
*엇먹다: 사리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비꼬다.
*북새: 많은 사람이 야단스럽게 부산을 떨며 법석이는 일.
김유정의 농촌 소설
김유정은 농촌에서의 삶의 경험을 토대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다수 창작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농촌은 남녀 간의 사랑과 함께 다양한 삶의 양상이 펼쳐지는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 인물들이 보여 주는 행위의 이면에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농촌 현실의 모순과 그로 인한 삶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백꽃'에서 소작논의 아들인 '나'가 마름의 딸인 점순과 벌이는 애정 갈등의 양상이나, '만무방'에서 소작농인 응오가 자신의 논에서 벼를 훔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은 이들이 놓여 있는 '지주 → 마름 → 소작농'의 농촌 계층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제의 검열이 삼엄하던 시기에 작가는 농촌에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우회적으로 보여 주었고, 이로써 당대 문학계에 새로운 방향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